최정, 메이저 세계대회 첫 4강···한국, 삼성화재배 4강 독식

신해용 선임기자 승인 2022.11.03 22:01 의견 0

최정 9단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여자 기사로는 처음으로 삼성화재배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여자 기사 첫 세계 대회 4강의 역사를 쓴 최정 9단. 루이나이웨이 9단이 1992년 대만 응씨배에서 4강에 진출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중국 기사들이 출전하지 않아 순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3일 오후 한국과 중국에 마련된 대국장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202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8강전 둘째 날 경기에서 변상일 9단과 최정 9단이 이형진 6단과 중국의 양딩신 9단을 물리치고 4강에 올랐다. 이로서 삼성화재배 4강은 한국 기사들이 모두 차지했고, 2년 연속 한국의 우승이 확정됐다. 2019년 중국에 4강을 모두 내주었던 한국은 2년 만에 수모를 되갚았다.

한국의 메이저 세계 대회 4강 독점은 이번이 여섯 번째다. 삼성화재배에서는 처음이고 LG배에서 네 차례, 후지쓰배에서 한 차례씩 기록했다.

최정 9단의 승리는 이변이었다. 까다로운 중국의 양딩신을 최정이 이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16강에서 일본의 이치리기 료에게 행운의 역전승을 거두고 올라온 최정의 기세는 무서웠다. 중반 이후 한 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고 201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었다.

두 선수의 포석은 '내 갈 길을 간다'였다. 통상의 포석과 달리 자기 영역에 확실한 대못을 쳤다. 그리고 우상귀와 좌하귀를 똑같은 모양으로 처리했다. 三·3 침입도 불사하며 실리를 중시하는 인공 지능 포석이 유행하는 시대에 모처럼 세력을 중시하는 포석이 나왔다.

포석 이후 최정 9단은 상변에서 상대 세력을 삭감했고, 우하귀에서는 백의 침입에 집을 지켰다. 이어 좌상귀에 침입해 살면서 선실리 후타개의 전략을 확실히 했다. 양딩신은 상변 흑돌들을 압박했고, 최정은 2단 젖힘을 하면서 강하게 나갔다. 양딩신은 백 74로 패를 결행했는데 인공 지능은 이 수를 실수라고 지적했다. 우선 하변을 정리한 후 패를 하지 말고 참는 것이 최선이었다.

최정 9단은 하변에 팻감을 썼고 양딩신 9단은 이에 불청하고 패를 따냈다. 그리고 이 팻감이 승부의 방향을 바꿨다. 사실 백이 팻감을 안 받은 이유는 팻감을 안 받아도 하변 백은 살 수 있기 때문. 백은 이 부분을 미완으로 놔두고 좌하변 흑 대마 공격에 나섰다. 집이 부족한 백은 흑 대마를 잡아야 승부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이때 빛나는 최정의 승부수가 나왔다. 백이 104로 좌변 공격에 집중할 때 과감하게 손을 빼 흑 105로 우변 백 4점을 제압했다. 그리고 한번 더 손을 빼 흑 113으로 우변을 완전히 잡아 버렸다. 이 수로 미완으로 남겨진 좌하귀 뒷 맛이 완전히 없어지면서 확실하게 20여 집 이상 앞서게 됐다. 양딩신도 좌하귀에서 넘어가면서 사는 수를 보고 있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남은 것은 좌변 흑 대마의 타개였다. 흑은 살기만 하면 되는 상황. 양딩신은 백 114로 좌상변 흑 2점을 잡았는데, 이 수가 패착이었다. 이 수로는 당연히 좌하변 흑 대마를 씌워 답답하게 만들어야 했다. 바로 흑이 115로 두 칸 뛰면서 흑 대마가 탄력이 생겼고, 백의 공격이 쉽지 않게 됐다. 결국 흑 대마가 두 집 내고 살면서 양딩신은 돌을 던졌다.

승리 직후 인터뷰에서 최정 9단은 “4강 진출은 예상 못했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굉장히 오랜만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결승에 한번 가보고 싶다”며 “4강 상대인 변상일 9단에게는 이겨 본 기억이 없는데 나보다 변상일 9단의 부담이 더 클 것이다. 오늘처럼 죽어라 들이받아 보겠다(웃음)”는 이야기를 전했다.

실력에 비해 메이저 세계 대회 성적이 좋지 않은 변상일 9단. 메이저 세계 대회 두 번째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변상일 9단은 이형진 6단에게 168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면서 삼성화재배에서 첫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중반까지 팽팽하게 흘러가다가 변상일 9단이 좌변에 큰 집을 지으면서 일찍 국면이 정리됐다. 변상일 9단은 메이저 세계 대회에서는 2020년 제25회 LG배 이후 두 번째 4강이다.

경기 직후 열린 4강 대진 추첨 결과 4일 변상일 9단과 최정 9단의 대결이 성사됐다. 상대 전적은 변상일 9단이 최정 9단에게 5승을 기록 중이다. 이어 5일에는 신진서 9단과 김명훈 9단이 맞붙는다. 상대 전적은 신진서 9단이 김명훈 9단에게 5승 3패로 앞서 있다.

삼성화재배 8강전 둘째 날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 왼쪽부터 최정·변상일 9단, 이형진 6단


삼성화재해상보험(주)이 후원하고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202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의 우승 상금은 3억 원, 준우승 상금은 1억 원이다. 제한 시간은 각자 2시간에 초읽기 1분 5회씩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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