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아, 나하고 놀자] 피셔방식 전성기

박정원 기자 승인 2023.02.04 13:29 | 최종 수정 2023.02.05 13:38 의견 0


요즘 피셔 방식(Fischer's rule)이 인기다.

지난해 10월 18일 자 '바둑의 다양한 대회 방식' 중 하나로 소개했던 피셔 방식이 대세다. 그 당시만 해도 일본 바둑장기채널이 후원하는 용성전(龍星戰)과 크라운해태배 프로기전 정도에서만 피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지금은 용성전, 크라운해태배 프로기전, 한국바둑리그, 하나은행 MZ바둑 슈퍼매치에 이어 YK건기배에 피셔룰이 도입돼 현재 5개 기전에서 피셔 방식을 쓰고 있다.

빨리 두는 만큼 시간을 버는 피셔 방식(시간 누적 방식)은 합리적인 면이 있지만, 전통적인 초읽기에 길들여진 대부분의 기사들에게는 스트레스다.

기존 방식에서는 제한 시간을 다 쓰고 초읽기에 들어가도 정해진 시간이 규칙적으로 계속 주어지기 때문에 일정한 호흡으로 둘 수 있다. 하지만 피셔 방식에서는 시간이 정형화돼 있지 않다 보니 기사들이 그 점을 어려워한다. 20초 초읽기에 몰렸다가도 시간이 늘기도 하고, 또다시 초읽기에 들어가고 하는 불안정한 시간 패턴이 일정한 승부 호흡을 가져가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야구를 예로 들면, 일정한 속도로 들어오는 160km의 패스트볼보다 시속 130km의 변화구 다음에 들어오는 150km의 패스트볼이 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느린 공 다음의 빠른 공은 제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일정한 속도의 20초보다 1분을 쓴 다음 갑자기 찾아오는 20초 초읽기의 압박이 대국자를 훨씬 혼란스럽게 한다.

이번 시즌 바둑리그에서 심심치 않게 시간 패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빨리 둬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마음이 급해지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계시기 누르는 손이 늦다. 그러다 보니 실력과 상관없는 승부가 나오기도 하는데, 관전하던 사람들에게는 허무하고 맥 빠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피셔 방식은 최근 사회 트렌드에 부합하는 방식이긴 하다. 유튜브 쇼츠(shorts)나 인스타그램 릴스(reels), 틱톡 등 길어야 10분 이내의 숏폼 영상 콘텐츠가 인기인 요즘 시대에 어쩌면 피셔 방식이 가장 최적화된 방식일지도 모른다.

피셔 방식의 장점은 스피디한 경기 진행이다.

일반적으로는 기사들은 초읽기에서 시간을 다 쓰고 착수하는 경우가 많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대국이 길어지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길게 가는 경우에는 대여섯 시간이 걸리기도 해, 바둑을 두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정신적·신체적으로 무척 힘들다.

반면 피셔 방식에서는 경기가 빠르게 진행돼 보는 입장에서는 훨씬 덜 지루하고 집중력 있게 볼 수 있다. 대국이 끝나는 시간을 예측할 수 있어 편하다. 또한 대국자는 시간을 적립할 수 있어서 필요할 때 시간 공격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피셔 방식에서는 복잡한 수들을 잘 두지 않기 때문에 바둑 내용면에서 보면 좀 아쉽다는 의견도 있지만, 바둑이 지루하고 늘어진다는 입장에서 보면 좋은 대안이다.

바둑 기사들도 MZ세대 기사가 늘고 있고 바둑을 보는 사람도 세대가 교체되기 마련이다. 모든 게 빨라지고 트렌드에 민감한 최근 흐름 속에서, 앞으로 피셔 방식은 여러 기전에서 선택하는 보편적인 대국 방식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제한 시간을 주고 일정한 초읽기 시간을 부여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함께 피셔 방식 등 다양한 대국 방식을 잘 섞어 쓴다면 바둑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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