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아, 나하고 놀자] 호구(虎口)

박정원 기자 승인 2022.06.20 22:38 | 최종 수정 2022.06.21 07:12 의견 0

오늘의 바둑 용어는 호구(虎口)입니다.

호구 잡혔다, 호갱(호구+고객님) 등 우리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호구라는 말은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원래 ‘범의 아가리’라는 뜻의 호구(虎口)는 바둑에서 시작됐습니다.

위, 아래, 그리고 양 옆 네 군데의 자리 중 상대편이 세 군데에 먼저 착점해 내 돌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머지 한 군데에 상대편이 돌을 놓으면 내 돌이 잡혀 버리고 맙니다. 그 모양이 마치 먹이를 앞에 놓고 벌리고 있는 범의 아가리 같다고 하여 호구(虎口)라고 합니다. 주변이 적의 돌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만 트인 모양으로 매우 약하고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반대로 상대의 입장에서는 한 수만 더 놓으면 뺑 둘러싸 돌을 따낼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먼저 호구 모양을 만들면 안전한 형세를 갖추게 되지만 상대방에게 그곳을 빼앗기면 공격을 받기 쉽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호구는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뜻합니다.

호구 안에 바둑 돌을 밀어 넣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죠. 실제로 바둑을 두다보면 그 자리에 돌을 놓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호구되는 곳이 급소다'라는 바둑 격언이 있듯이 서로 그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대국 내내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호구 안에 바둑 돌을 놓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둑판에서는 호구 자리가 눈에 보이지만 실생활에서는 그 자리를 볼 수 없어 실수를 하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바둑에서는 잘 아는데 실생활에서 호구 안에 돌을 놓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수만 생각하고 상대의 수를 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호구 안에 바둑 돌을 밀어 넣는 어리석음을 이용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을 '호구 잡다'라고 하고, 손해를 입는 것을 '호구 잡히다'라고 합니다.

상대의 의중을 헤아리고 두세 수 앞을 생각하는 바둑의 현명함을 가진다면 제 발로 호구 자리로 들어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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