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아, 나하고 놀자] 위기구품(圍棋九品) - 수졸(守拙)

박정원 기자 승인 2022.10.30 10:43 | 최종 수정 2022.11.18 18:57 의견 0

바둑의 기량을 9단계로 나눠 별칭을 붙인 것이 위기구품(圍棋九品)이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고수 270명의 기보를 가려 9단계로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위기구품은 송(宋)대의 학자 장의(張擬)가 지은 바둑 고전 '기경(棋經)'에 소개되어 있다.

위기(圍棋)는 서로 상대하여 말이 없이도 의사가 통한다는 뜻으로, 바둑 자체를 일컫기도 하고 바둑 두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수담(手談)과 같은 말이다.

위기구품은 바둑 기술의 높낮이뿐만 아니라 기사의 정신적 경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초단부터 9단까지의 품계를 수졸(守拙), 약우(若愚), 투력(鬪力), 소교(小巧), 용지(用智), 통유(通幽),구체(具體), 좌조(坐照), 입신(入神)으로 구분해 이 아홉 가지를 위기구품이라 한다. 오늘날에도 바둑 전문 기사에게 부여되는 기품 있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초단(初段)은 수졸(守拙)이라 부른다.

바둑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은 있지만 대국에 허점이 많은 것을 졸(拙)이라고 한다.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고치는 것을 수(守)라고 한다. 아직 대국에 부족함이 많지만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치는 것이 수졸이다. 공격과 수비를 모르고 제 한 몸만 겨우 지킬 수 있는 단계로, 미숙하지만 스스로를 지킬 줄 안다는 뜻이다.

졸(拙)은 교(巧)의 반대 의미를 갖고 있다. 약삭빠르게 기술을 쓰기보다는 모자라고 변변치 못해도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바로잡을 줄 아는 실력을 갖춘 단계가 바로 수졸이다.

노자(老子) 도덕경에 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말이 있다. 훌륭한 기교는 오히려 꾸민 흔적이 없어 어수룩해 보인다는 뜻이다.

아주 능숙한 사람은 물 흐르 듯 자연스럽고, 기교를 부리거나 자랑하지 않아 졸한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교를 지닐 수 있어 고수는 재주를 자랑하지 않고 완벽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수졸'하면 떠오르는 두 곳이 있다. 경주 양동마을에 국가민속문화재인 수졸당 고택이 있다. 조선 광해군 때 유학자 이언적 선생의 손자 이의잠이 세운 것으로 그의 호를 따서 집 이름을 수졸당(守拙堂)이라 했다.

다른 하나는 서울 논현동에 있는 미술 평론가 유홍준의 집 수졸당이다. 1993년에 건축가 승효상에게 설계를 의뢰해 지은 수졸당은 전통적인 조촐함과 비워냄의 미학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더했다.

수졸은 탐욕스런 마음에서 벗어나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 역경들을 이겨내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부족함을 아는 지혜이기도 하며, 오랜 시간 축적되어야 비로소 그 진가가 나타나고 결실을 보게 된다.

저작권자 ⓒ 바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