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급수처럼 술 마시는 데도 단(段)이 있다 ···'주도유단(酒道有段)'
박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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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14:31 | 최종 수정 2022.12.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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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조지훈의 수필집 '사랑과 지조'에 실린 수필 가운데 '주도유단(酒道有段)'이 있다.
술 마시는 주도에 대해 바둑과 비교하면서 18단계로 구분해 써놓은 것이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해져 안하무인이 된다고 했다. 또 술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歷)·주력(酒力)을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주정도 교양이라며, 많이 안다고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 많이 마신다고 주격(酒格)이 높아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주도에도 단(段)이 있으며, 술을 마신 연륜이나 같이 마신 친구, 계기, 술버릇 등을 종합해 단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1.부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9급
2.외주(畏酒) :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8급
3.민주(憫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7급
4.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6급
5.상주(商酒) : 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 5급
6.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4급
7.반주(飯酒) :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3급
8.학주(學酒) : 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酒卒] -2급
9.수주(睡酒) : 잠이 안와서 술을 먹는 사람 -1급
10.애주(愛酒) :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 -초단
11.기주(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酒客] -2단
12.탐주(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酒境] -3단
13.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4단
14.장주(長酒) : 주도 삼매(三昧)에 든 사람[酒仙] -5단
15.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酒賢] -6단
16.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酒聖] -7단
17.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酒宗] -8단
18.폐주(廢酒) : 열반주(涅槃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9단
부주, 외주, 민주, 은주는 술의 참맛을 모르는 사람이고 상주, 색주, 수주, 반주는 목적을 위해 마시는 술이라 술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급을 넘어 단에 오른 사람은 술의 참다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며, 유단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업료와 수행 기간도 상당히 필요하다고 했다.
조지훈 시인은 스스로를 학주(學酒) 정도의 경지라고 했으며, 20年 정진에 겨우 초급을 바라보고 있으나 이미 몸은 관주(觀酒)의 경지에 있다고 아쉬워했다.
만 47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시인은 탁월한 바둑 고수는 아니었지만 바둑을 잘 두었다고 한다.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던 박목월 시인도 바둑 두는 걸 무척 좋아해 바둑 시 '패착'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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