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아, 나하고 놀자] 위기십결(圍棋十訣)- 6.봉위수기(逢危須棄)
박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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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5 09:27 | 최종 수정 2023.05.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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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십결의 여섯 번째는 봉위수기(逢危須棄)다.
위험에 처하게 되면 모름지기 버리든지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이다.
바둑에는 곤마(困馬)라는 게 있다. 곤마란 상대에게 심하게 공격당하거나 둘러싸여 온전한 삶을 살기 힘든 딱한 처지에 놓인 말이다. 곤마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좋지만 바둑을 둘 때 곤마가 하나도 없는 경우는 드물다. 대마가 완생하지 못하고 쫓겨 다니면 바둑을 뜻대로 두기 어렵다.
이렇게 상대에게 쫓기거나 포위돼서 제대로 된 집을 짓지 못하고 살기 어려운 말처럼,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고민하지 말고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살아갈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살려야 하지만, 살릴 가망이 없거나 큰 대가를 치르고 사는 거라면 과감히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미련 없이 제거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차선이 될 수는 있다.
버리더라도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이익을 강구하면서 활용하는 전술이 봉위수기다.
드라마 '미생'에 봉위수기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건 없어. 돌이 외로워지거나 곤마에 빠졌다는 건 근거가 부족하거나 수읽기에 실패해서겠지. 곤마가 된 돌은 그대로 죽게 놔두는거야. 단, 그들을 활용하면서 내 이익을 도모하는거지."
이창호 9단은 에세이 '이창호의 부득탐승'에서 이렇게 썼다.
"가망 없는 곤마를 끌고 나가 잡히면 대패하고 살더라도 결국은 지게 된다.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이불여사(生而不如死)가 이 경우의 말이다. 곤마는 덩치가 커지기 전에 버릴 것인지 살릴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마의 생사에 승부가 걸려 있다면 죽든 살든 헤쳐나가 봐야겠지만 아무튼 결단의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위험에 맞닥뜨리면 포기하고 빨리 발을 빼는 게 상책이다.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건 기존의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괜히 작은 돌 살리려다 대마를 죽이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고, 과감히 돌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만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자존심과 오기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게 있다. 고집 부리다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일단은 살아남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포기하고 훗날을 도모 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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