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바둑리그] 첫 출전 구쯔하오, 0.4%의 확률을 뒤집다

신해용 선임기자 승인 2024.01.28 01:18 | 최종 수정 2024.01.28 01:27 의견 0

중국 랭킹 2위 구쯔하오 9단이 KB바둑리그에 처음 등장했다.

초반엔 긴장한 탓인지 실력 발휘를 못하다가 막판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첫 승을 신고했다. 외국인 선수가 출전하면 패배하는 징크스를 깨뜨리고 구쯔하오 9단이 속한 원익은 개막 5연승의 신바람을 냈다.

구쯔하오 9단의 승리 세리머니. 대국 후 인터뷰에서 "세리머니는 바둑 내용이 안 좋아서 그렇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세리머니에 본인 스스로도 어색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둑TV]


27일 저녁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 5라운드 3경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원익이 마한의심장 영암을 3:1로 제압했다.

많은 바둑 팬들의 관심 속에 등장한 구쯔하오 9단의 시작은 좋지 못했다. 안성준 9단과 속기판인 2국에서 만난 구쯔하오 9단은 초반 우상에서 좋은 모양을 만들었지만 그 곳에 침투한 안성준 9단의 승부수에 말리며 위기를 맞았다. 우상귀까지 다 지키려고 욕심을 내던 구쯔하오 9단은 안성준 9단이 우중앙의 흑 요석 3점을 잡고 중앙을 싸바르자 단번에 주도권을 뺏겼다.

이어 안성준 9단이 상변과 좌변, 좌하에 이르기까지 두텁게 모양을 갖추자 차이가 더 벌어졌다. 이때 집 차이는 10집 안팎으로 백의 우세. 구쯔하오 9단의 예상 승률은 0.4%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대국을 끝낼 안성준 9단의 한방이 부족했다. 형세에 대한 낙관과 승리에 대한 조바심이 안성준 9단을 계속 물러나게 했다. 그 틈을 타 구쯔하오 9단은 차이를 조금씩 좁혔고, 좌변에서 흑이 이득을 보며 집 차이는 2집 이내로 줄어들었다.

집 차이가 줄어들자 안성준 9단이 더 흔들렸다. 끝내기에서 안성준 9단이 조금씩 손해를 봤고, 좌상귀를 막은 백 188이 패착이 되면서 흑이 역전에 성공했다. 백 188은 너무 작은 곳이었다. 구쯔하오 9단이 선수로 좌하귀에 비마달리기 끝내기를 하고 좌변과 상변의 큰 곳들을 차지하면서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 막판에 좌변 백 대마까지 잡히면서 견디지 못한 안성준 9단이 돌을 던졌다. 231수 끝, 흑 불계승.

대국이 끝나고 대역전패를 당한 안성준 9단(왼쪽)이 괴로워하고 있다. 구쯔하오 9단이 상대 전적에서 3승으로 차이를 벌렸다. [한국기원]

갑조리그 경기를 끝내고 대국 당일 한국에 도착한 구쯔하오 9단. 피셔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듯 아슬아슬하게 착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기원]

중반까지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던 안성준 9단. 질 수 없는 바둑이 뒤집혀 내상이 꽤 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즌 6연패다. [한국기원]


원익은 구쯔하오 9단이 귀중한 선제점을 올린 데 이어 주장 박정환 9단이 박종훈 7단을 꺾고 2:1로 달아났고, 박영훈 9단이 최철한 9단에게 이기면서 3라운드 연속 승점 3점 승리를 거뒀다.

절친 간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박영훈 9단과 최철한 9단의 경기는 박영훈 9단의 완승으로 끝났다. 흑을 잡은 최철한 9단이 초반부터 좌상에서 과감하게 상대를 압박했지만, 이 작전이 무리수가 되면서 백에게 실리와 두터움을 동시에 허용했다. 엷어진 흑돌들이 계속 두 집 내고 삶을 연명하는 사이에 박영훈 9단이 실리를 차지하며 낙승을 거뒀다.

마한의심장 영암은 설현준 8단이 이지현 9단에게 역전승을 거둬 영봉패를 면했다.

박영훈 9단(왼쪽)과 최철한 9단. 이날이 48번째 대국이었다. [한국기원]

박정환 9단(오른쪽)과 박종훈 7단 [한국기원]

이지현 9단(왼쪽)과 설현준 8단. 이지현 9단이 좌하 대마를 잡기 직전에 빅이 되면서 기회를 놓쳤고, 이후 열세를 만회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기원]

갑조리그 경기를 마치고 시합 당일 귀국한 박정환 9단. 28일(일)에는 설현준 8단과 한국기원 선수권전 결승 진출이 걸려 있는 중요한 경기가 예정돼 있다. [한국기원]

이번 시즌 4승 1패의 호조를 보이고 있는 박영훈 9단 [한국기원]

부진한 안성준 9단을 대신해 마한의심장 영암의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설현준 8단 [한국기원]


이날 바둑리그 5라운드 대국이 모두 끝난 후 구쯔하오 9단은 "처음 리그에 참가해서 바둑을 뒀는데 내용은 안 좋았다. 운이 좋아서 이기게 됐다"면서 "피셔방식으로 두다 보니까 시간이 굉장히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는 20초에 한 수를 두는 바둑이라 생각하고 리듬을 찾아서 뒀다"고 말했다.

전날 갑조리그 경기를 하고 바로 한국에 온 구쯔하오 9단은 "어제 갑조리그 경기를 하고 오늘 3시에 한국에 왔다. 힘든 일정이었지만 이것도 하나의 자기 단련의 과정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쯔하오 9단은 "바둑리그 참가 요청을 받았을 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오게 됐다. 현장에 와서 동료들과 같이 검토하는 과정이 굉장히 기뻤다"고 말하고 "한국 리그가 중국 리그에 비해 훨씬 빠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연습하겠다"고 밝혔다.

구쯔하오 9단(오른쪽)의 인터뷰 모습. 왼쪽은 통역을 맡은 한국기원 박승철 과장 [한국기원]

오후 3시쯤 한국에 도착해 대국 전까지 검토실에서 인공지능으로 바둑 공부를 한 구쯔하오 9단 [한국기원]


구쯔하오 9단의 합류로 완전체를 이룬 원익은 예상대로 차원이 다른 면모를 과시했다. 박정환·구쯔하오의 막강 투 톱에 이지현·박영훈의 안정적인 중간층, 그리고 김진휘·금지우의 패기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원익은 이날 승리로 5승 무패(승점 14점)로 2위와 차이를 벌리며 선두를 지켰다.

마한의심장 영암은 1승 4패(승점 5점)로 6위를 유지했다.

◆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 5라운드 3경기

마한의심장 영암 원익 결과 비고
(2) 설현준 O (2) 이지현 X 157수, 흑 불계승 장고
(1) 안성준 X (후) 구쯔하오 O 231수, 흑 불계승 속기
(3) 최철한 X (3) 박영훈 O 208수, 백 불계승 속기
(4) 박종훈 X (1) 박정환 O 185수, 흑 불계승 속기
1 3

※ 제한 시간(시간누적방식) : 장고판 40분+20초, 속기판 10분+20초

원익 선수단. 왼쪽부터 금지우 5단, 이지현 9단, 구쯔하오 9단, 박정환 9단, 박영훈 9단, 이희성 감독, 김진휘 6단. [한국기원]


28일(일)에는 울산 고려아연과 Kixx의 5라운드 4경기가 열린다. 대진은 이창석-김창훈(0:0), 랴오위안허-김승재(0:0), 신민준-백현우(0:0), 한상조-박진솔(1:3)의 순서다(괄호 안은 상대 전적, 앞 선수가 울산 고려아연).

에이스 신진서 9단이 빠진 Kixx가 외국인 선수 랴오위안허 9단까지 합류한 울산 고려아연에 어떻게 맞설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8개 팀이 출전해 단일 리그로 치러지는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14라운드(더블리그)의 정규 리그와 스텝래더 방식으로 열리는 포스트시즌을 통해 최종 우승팀을 가린다.

상금은 우승 2억5000만 원, 준우승 1억 원, 3위 6000만 원, 4위 3000만 원이며 상금과 별도로 정규 시즌 매 경기 승패에 따라 승리 팀에 1400만 원, 패배 팀에 700만 원의 대국료를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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