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훼손된 화성행궁, 119년 만에 제 모습 되찾았다
박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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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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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철거됐던 수원 화성행궁이 119년 만에 본 모습을 되찾았다.
경기도 수원시는 화성행궁의 우화관·별주 복원 사업이 완료되면서 1989년 시작된 화성행궁 복원 사업이 35년 만에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1789년(정조 13년) 정조대왕이 건립한 화성행궁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 읍치 자리(화성시 융릉)로 이장하고,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기슭으로 옮기면서 만들어졌다.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사용하다 임금이 수원에 행차하면 임금과 수행 관원들이 머무는 궁실(宮室)로 이용됐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만들고자 했던 신도시 수원화성의 행정을 도맡았던 관청이자 화성유수부를 굳건하게 지킨 장용영(정조의 호위 군대) 군사들의 군영이었다. 수원화성 축조 과정이 기록된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화성행궁은 약 600칸 규모로 정궁(正宮) 형태다. 정조가 훗날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 머물기 위해 만들어 규모와 격식이 궁궐에 버금간다. 조선시대 지방에 건립된 행궁 중 최대 규모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옮긴 1789년부터 모두 13차례 화성행궁에 머물렀고 19세기 말까지 궁실이자 관청으로 기능을 해 왔다.
화성행궁은 1905년 우화관에 수원공립소학교가 들어서면서 파괴되기 시작해 1911년에 봉수당이 자혜의원으로, 낙남헌은 수원군청으로, 북군영은 경찰서로 사용됐다. 1923년에는 화성행궁 일원을 허물고 경기도립병원을 신축했다.
화성행궁 복원 사업은 1989년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됐다. 위원회가 복원을 위해 경기도립병원 이전을 건의했고, 경기도지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35년에 걸친 복원 사업이 구체화됐다.
복원 사업은 ‘화성성역의궤’, ‘정리의궤’ 등 기록·발굴 자료를 토대로 1796년 당시 화성행궁의 모습으로의 복원을 원칙으로 2단계로 나뉘어 진행됐다.
수원시는 경기도립병원을 철거 후 화성행궁의 중심 건물인 봉수당을 시작으로 482칸을 복원해 2002년 1단계 복원 사업을 완료했다.
2003년부터는 화성행궁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건물이자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우화관(于華館)과 임금이 행차할 때 음식을 준비하고 임금에게 대접할 음식의 예법을 기록한 문서를 보관하던 장소인 별주(別廚)를 복원하는 2단계 복원 사업에 착수해 최근 완료했다.
2단계에 걸친 복원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화성행궁이 본 모습을 잃기 시작한 1905년 이후 119년 만에, 1989년 복원 사업을 시작한 지 35년 만에 제 모습을 찾았다.
수원시는 24일 오후 2시 30분 화성행궁 우화관 바깥마당에서 ‘수원 화성행궁 우화관·별주 복원 개관식’을 연다.
수원시 관계자는 “화성행궁처럼 다양한 역사와 기능이 있는 행궁은 없다”며 “이번 복원 사업으로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화성행궁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해 화성행궁만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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