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아, 나하고 놀자] 위기십결(圍棋十訣)- 7.신물경속(愼勿輕速)
박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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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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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물경속(愼勿輕速), 글자 그대로 풀면 "가볍고 빠름을 경계하라"다.
바둑을 경솔하게 빨리 두지 말고 한 수 한 수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두라는 말이다.
바둑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는 속기로 많은 판을 둬 보는 것이 좋지만, 실제 대국에서는 무조건 빨리 두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 빠른 속기는 수읽기를 덜 하게 돼 착각하거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에는 속기 바둑이라는 것이 있다. 바둑을 천천히 두게 되면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하기 때문에 서로 시간을 정해 빠르게 대국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이 다 하면 초읽기가 있어 몇 초에 한 번씩 꼭 수를 둬야 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두지 못하면 시간 패 처리된다.
속기의 천재 서능욱 9단은 속기의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염주를 들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속기 바둑에서는 프로 기사들도 실수를 많이 한다. 초읽기에 몰리면 실수하기 마련이라 큰 대회에서 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빠르게 둘수록 실수할 확률이 높아지니 성급하게 두지 말라는 것이 신물경속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너무 늦어도 문제지만 반대로 너무 빨리 결론을 내려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히 실행하면 여러가지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생겨 큰 낭패를 보기도 한다.
웹툰과 드라마로 유명한 '미생'에서 명문대 출신 엘리트 장백기(강하늘)는 문서를 정리하고 오타를 찾는 기본 업무를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류 작성같은 기본은 이미 충분히 익혔고 본인은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폼나는 업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드러내고 돋보이고 싶은 의욕이 앞서면 조급해지는 법이다. 결국 고졸 사원 장그래도 알고 있는 기본을 놓쳐 작성한 서류를 반려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타 부서 과장의 비리 정황을 포착한 장그래(임시완)는 "신물경속. 경솔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 일단 전진하면 실패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 결과는 확연하다. 상대가 죽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라고 얘기한다.
경솔함은 화를 부르는 법.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본부터 착실히 다져야 하고, 신중히 생각해야 실수가 없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뒤가 없다는 생각으로 추진력 있게 나아가야 한다.
결국 신물경속은, 신속함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심사숙고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바둑은 신중하게 둬야 하지만 바둑도 요즘은 속기가 대세다. 빨리 두면서 잘 두기까지 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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